과수원집 아들은 요맘때 바쁩니다.
요맘때 제일 맛있는 제철 과일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사과
높은 기온차에 당도가 높고 비타민 가득
'아들~ 사과 주문 좀 받아.'
며칠 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 오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를 하시는 분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오전부터 어쩐 일이세요?"
"아들 어제부터 사과 따고 있는데, 이제 주문받으면 될 것 같으니까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 있으면 주문 좀 받아."
잊고 있었다. 매년 11월이면 우리 집은 바쁜 시기가 돌아온다. 나는 어머니께 알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휴무 때 부모님 댁에 가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지금까지 20년 이상 과수원을 꾸려오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바쁜 가을철이 되면 주말에는 친구들의 약속을 뒤로하고 나는 동생과 함께 시골로 가서 추수로 바쁜 날들을 보내야 했다. 당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상황에 많이 짜증이 부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철이란 게 들고 바쁜 시기가 되면 따로 연락이 없어도 시간을 내어 일손을 도우러 부모님 댁으로 간다.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장손 시근이 많이 들었네."라고 하시며 놀라지 않으셨을까? (시근은 경상도 사투리로 철이 들었다의 '철'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오늘 회사 휴무를 맞아 나는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사실 아침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데 어제 늦게까지 이것저것 하느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준비가 늦어서 마음이 급했다.
휴무날 집으로 가을 길
평일 점심시간이라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적다. 여기저기 보이는 산들은 온통 단풍으로 알록달록했다. 화사한 가을 풍경에 날씨까지 좋아서 소풍이라도 떠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실상은 엄청난 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오다 보니 어느새 동네 어귀에 도착했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경운기에 가득 실린 컨테이너 박스를 내리고 계셨다. 박스 안에는 붉은빛이 가득한 사과들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경운기보다 트럭에 실으면 더 편하고 많이 실을 수 있지만 사과밭이 높은 곳에 위치한 데다 길까지 비포장도로라 트럭은 미끄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과를 가득 싣고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라 짐칸이 좁더라도 어쩔 수 없이 경운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밭에서 따온 사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20kg는 족히 나갈 것 같은 박스를 나르다 보니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깔아 둔 두툼한 깔게 위로 사과가 수북이 쌓였다. 밭에는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사과를 따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나는 빈 빅스들을 챙겨 서둘러 다시 밭으로 향했다.
만년 초보 일꾼의 작업 투입기
사과밭에는 맛있는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내 주먹보다 큰 사과부터 주머니에 들어갈 앙증맞은 크기까지 사이즈도 다양했다. 사과나무들 앞에는 사과가 담긴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있었고 어머니와 동네분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열심히 사과를 따고 계셨다.
나는 손수레를 끌고 집에서 싣고 온 빈 박스를 나무 아래에 가득 찬 박스와 교체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나무들 사이에 좁게 만들어진 작은 골을 외발 손수레를 끌고 왕복을 해야 하는데 사과가 가득 담긴 외발 손수레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다 보니 양팔에 힘을 가득 주고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걸어가야 했는데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썩은 사과들이 미끄러운 상태라 밟기라도 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평소 내가 없으면 부모님이 이일들을 하실 텐데 나와 같이 힘이 들 거란 생각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대한 많이 도와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초보운전실력으로 부지런히 사과를 옮겼다.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와이프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분들에게 주문이 들어와 집에 오는 길에 가져와 달라는 것이었다. 알겠다고 하고 개수를 적어두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분들은 매년 이렇게 직거래를 통해 우리 집 사과를 주문해주시는데 맛도 있지만 일반 과일가게나 마트에선 살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라 좋아하시는 듯하다.
언제나 힐링
어느새 오늘 분량의 일은 마무리가 되어갔다. 잠시 후 어머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았고 우리는 새참이 담긴 큰 바구니 앞에 둘러앉았다. 바구니 안에는 각종 음료와 초코파이, 삶은 계란들이 있었다. 나는 계란과 초코파이 그리고 레스비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역시 농사일하다가 먹는 새참은 꿀맛이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계란을 먹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서서 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여러 종류의 새소리들을 들었다. 매일 바쁜 일상으로 지쳐있던 내게 그 소리들이 힐링이 되어주는 듯했다. 언제나 나는 시골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몸은 힘들 때도 있지만 정겹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과 여유로운 풍경들이 쫓기듯 살고 있던 내게 세상의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을 맞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내일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일상에서 간간히 맛볼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나는 너무나 좋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TV 프로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를 좋아하게 된다는데 아마 나와 같은 마음에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닌까 생각해본다.
밭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주문이 들어온 사과들을 포장했다. 맛있는 사과들이 고객들의 집으로 안전하게 도착하길 바라며 꼼꼼히 포장을 하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집안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새어 나온다. 근침이 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흘러간다. 마음이 편안한 하루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일상 탐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추운 아침 (BACHA COFFEE) (0) | 2022.12.23 |
---|---|
손흥민 선수가 왜 중앙에 있죠? (0) | 2022.12.05 |
코로나 확진 마지막 이야기 (실시간 작성) (0) | 2022.11.12 |
코로나 확진 넷째날 이야기 (실시간 작성) (0) | 2022.11.11 |
코로나 확진 셋째날 이야기 (실시간 작성) (0) | 2022.11.10 |
댓글